[🏠 일상]/시험

프랑스어 어학병 합격 후기

지원동기

2021년 군입대를 위해서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면서 시기를 잘 몰라서 카튜사 지원에 실패했다. 추첨에 떨어진것이 아니라 애초에 지원도 하지 못했다. 시기를 잘 몰랐어도 당시에 코로나 등등의 이슈로 토익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차피 안됐을거였다. (여담이지만 아이엘츠 아카데믹 스코어 8.0인데 왜 아이엘츠는 안받아주냐?)

 

때문에 차선책으로 알아본것이 공군, 영어어학병, 프랑스어어학병, 어학장교 였다. 영어 어학병은 괴랄한 난이도와 경쟁률, 그리고 1군 2군이 아니라 3군 4군(군이라는 용어가 맞는지는 모르겠다)에 걸리면 군생활 끝날때까지 영어 쓸 일도 없고 행정병으로 전락한다는 이유로 탈락. 어학장교는 3년이라서 탈락. 답은 결국 공군 아니면 프랑스어 어학병이었다.

 

공군의 경우에 장점은 충분한 공부시간, 나름 인맥쌓기 좋다는 이야기, 많은 휴가와 상대적으로 쉬운 보직들이 있지만 단점은 육군보다 3개월 더 긴 복무기간, 개인적인 생각에 업무가 너무 단조로울 수 있다는 점이 있었다 (사실 누구에겐 장점?).

 

프랑스어 어학병의 경우에 장점은 특별한 경험, 공군대비 상대적으로 짧은 복무기간, 인맥 쌓기 좋다는점이 있고 단점은 5월에 시험을보고 6월에 결과가 발표되고 7월에 입대한다는점 (한국에 2021년 11월 말에 입국했으니 그 사이에 모든 시간이 붕 떠버리게 된다. 이 이유로 SCR 자격증을 공부하게 된것이다.) 또 업무가 불규칙적인 경우가 많다고 경험자에게 전해들었다. 나는 '특별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프랑스어 어학병 지원을 생각하게 됐다. (어학병 생활이 다른 야전 생활보다 편하다는 이유는 기본 전제이다.)

 

아 그리고 어학병 지원을 생각하던중 날아온 병무통지서에는 내가 최전방 '산악부대'로 가게될것이라고 적혀있어서 프랑스어 어학병 지원에 더욱 강력한 동기가 생겼다는것은.... 안 비밀이다.

지원준비

본격적으로 프랑스어 어학병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원조건은 내 경우엔 생각보다 간단했다. 병무청 홈페이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나의 경우엔 프랑스어권 국가에서 5년이상 거주한 조건으로 지원했다. 별도로 서류제출 필요없이 출입국 기록으로 알아서 처리한다고 되어있고 실제로 그렇게 되긴했다. 다만 이 지원서를 내는 과정이 조금 짜증났는데 신청 받는 기간에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양식 서류를 작성하는데 개인정보와 학력, 자격증등을 다 기입하고 넘어가고 지원유형?같은것을 고르는 페이지에서 거주자격?이런것이 없어서 그냥 학력인가 자격증인가 이런걸 고르고 확인을 눌러도 도무지 넘어가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꼼수로 그 전 단계에서 프랑스어 자격증이 있다고 그냥 써 넣으면 그 후 단계에서 자동으로 필요조건 충족하고 확인버튼 누르고 지원할 수 있게 된다는거였다. 그래서 그대로 했다. 나중에 자기들도 이상한거 아는지 전화와서 이거 맞냐고 물어보길래 지원요건 중 거주자격 해당자라고 알려줘서 반수동(?)으로 지원을 마쳤다.

공부시작

준비는 인터넷 검색해서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기본적으로 북핵문제, 외교문제, 유럽정세, 그리고 최근 국제이슈(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등)를 준비했다. 르몽드, 르피갸로, France24에서 나온 기사들과 영상들을 기반으로 불한 통번역 연습을 했고 KBS월드, 연합뉴스를 기반으로 한불 통번역 연습을 했다. KBS월드와 연합뉴스가 좋은 이유는 전자는 한국어를 영어로 어떻게 바꿨는지를 보면 영어에서 프랑스어로 바꾸는것은 쉽기 때문이고 후자는 처음부터 프랑스어로 기사를 낸다 (레전드).

 

단어 공부는 기사를 보면서 자주 나오는 표현과 단어 위주로 했다. 아예 단어집을 사서 공부하는 방식은 미련한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효율성도 떨어지는것 같다.

 

결과적으로 공부를 하는데 든 시간은 3주정도 걸렸다. 타이트하게 하지는 않았다. 다른 일정도 많아서 인생을 갈아넣은 수준은 아니었고 애초에 경쟁률이 3:1이어서 (이전에는 5:1, 6:1 정도라서 운이 좋았다.) 변별력을 요할것 같지 않아서 그냥 보통정도로 했다.

시험

이천에 있는 상승레스텔에 도착해서 2층 카페에서 김밥먹고 커피마시면서 쉬다가 단어집 한번 훑고 대기실로 가서 기다렸다. 역시나 나를 포함해서 총 3명이 있었고 한 분은 불어불문학과, 한 분은 느낌상(?) 교포분이거나 유학생분 같았다. 시험은 먼저 번역시험을 보고 후에 통역시험을 봤다.

 

번역시험은 불한, 한불 시험지를 동시에 받았고 문제풀이에 걸리는 시간은 20분이었다. 무엇을 먼저 시작하는지는 내 맘이지만 각 한불/불한 통번역 총 4가지 시험이 있고 각각 25점 배점이고 최소 10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번갈아가면서 번역을 했다. 두 시험지 모두 세 개 문단으로 구성되어있었고 불한번역은 2.1문단정도 번역했고 한불번역은 2문단정도 번역했다. 불한번역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인플레이션 관련한 내용이었고 한불번역 문제는 북한 정무회의 관련 문제였다. "제8기 제5회 회의"에서 "기"를 어떻게 번역해야될지 몰라서 "mandat"라고 번역한 기억이 있다.

번역시험 팁은 한불이든 불한이든 번역방향 상관없이 일단 매우 빠르게 필기체로 갈겨쓰면서 어떻게든 번역하고, 한불번역의 경우 불어번역시 중복되는 인물이나 사물등은 Il, Elle 등의 대명사를 사용해서 유연하게 번역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매우 매우 매우 모자르다. 실제로 나를 포함해서 2명이 번역을 끝내지 못했다. 한 분은 다 끝내셨다고 하셨다. (물론 과락이 있으니 최소한의 퀄리티는 신경써야된다.)

통역시험은 생각한것보다 쉬운조건이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았을때는 '3~4문장', '노트불가', '1회 청취', '기사나 방송을 그대로 사용해서 듣기 어려울 수 있음' 등의 난관이 있을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두 문장정도였고 노트도 가능하고 2회 들려주고 프랑스인이 또박또박 기사를 읽는듯한 느낌으로 문제가 나왔다. 한국어도 마찬가지였다. 감독관은 총 두 명으로 프랑스인 한 명, 군인(어학장교로 추정) 한 명이 있었다. 들어가면서 인사를 잘 해야됐는데 뭔가 긴장해서 고개만 숙였다.

 

통역시험은 불한 한불 각각 세 문제였다. 불한번역에서 한 문제에서 주어가 잘 안들려서 망쳤고 나머지는 그런대로 뜻은 맞게 통역한 느낌이었는데 한 가지 당황한점은 북한문제, AUKUS 잠수함 통수사건, 마침 프랑스 선거철이라 프랑스 대선이나 총선문제, 우크라이나 전쟁문제 이런것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방탄소년단, 오징어게임, 한류, 다문화 문제가 나와서 굉장히 당황했다. 내용을 들어보면 번역시험보다는 쉬워서 기본상식으로 방탄소년단이나 오징어게임을 조금 안다면 무리없게 통역할 수 있었겠지만 노력한것과 비교적 관련없는 문제여서 끝나고 나서 살짝 허탈했다. 오히려 다행일수도 있긴하다. 너무 어렵게 나온다면 나보다 더 준비하신 어떤분이 훨씬 더 잘 봤을수도 있는 부분이니까...

통역시험 팁은 처음 들려줄때 숫자나 날짜를 잘 노트하고 두번째때 중요한 주어와 뉘앙스를 숙지하면 좋을듯 하다.

시험 후

전반적인 느낌은 매우 잘봤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번역 부문에서 한 문단씩 놓쳤고 통역도 한 문장을 좀 망쳤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불어불문학과 출신인분은 번역을 다 못마치셨더라도 문장 구성적인 측면에서 매우 능숙하셨을듯 하고 (나처럼 스트릿 프랑스어를 배운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분은 만약 불어와 가까운 전공을 한 유학생이거나 교포면.... 아마 내 기회는 없을듯 하다. 공군지원을 생각해야되거나 그냥 최전방 가야할것 같다.

 

시험결과 발표일은 6월 2일 아침 10시인데 떨어질것을 대비해서 공군을 지원하려면 서류전형에서 추가점수를 받아야 한다. 필수는 아닌데 당연히 받으면 유리해서 헌혈, 봉사, 토익점수가 필요하다. 토익은 12월말에 가볍게(?) 985점 따놔서 괜찮지만 헌혈이나 봉사를 해야되서 알아보고 있다.

결과발표

6월 2일 10시 되자마자 병무청 앱에서 시험결과를 조회했다. 결과는...

뜨거운 합격

다행이다.. 업무가 쉬운업무는 아니라고 들었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 될것같다. 보통 정보사, 기무사, 777 에서 근무한다고 하는데 아직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고 그저 7월25일날 입대한다는 사실만 알고있다. 입영통지서에도 그냥 논산 훈련소에 오라고만 되어있다... 아무래도 훈련이 끝나고 어디로 배치될지 알게될것 같다.

 

정보 업뎃 및 근황 (22. 12. 09)

- 불어 어학병은 정보사 아니면 국방부라고 근무중인곳에서 카더라로 전해들었다.

(필자는 현재 위의 두 곳 중 한 군데에 배치되서 근무중이다. 🥐)

- 불어 어학병 선임도 나랑 똑같은 시험문제를 받았다고 했다. (1년마다 리뉴얼 하는듯?)

- 내가 속한 부대에 들어오게 되면 어학병은 어학병들 끼리만 지내게 된다. (다들 해외 거주 기간이 기본 10년 이상인 경우가 많다.)

- 다른 부대에 가게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유격가서 만난 타부대 중국어 어학병이 말해줬다. (그렇다... 어학병도 유격이 있다...혹한기도 있다... 제설도 있고... 뭐 다 있다.) 

- 필자의 주 업무는 번역이고 타 언어의 경우는 청취 업무도 종종 있는듯 하다. 통역 업무는 현재 필자가 속한 부대에서 하는것은 본 바가 없다. (일상 업무는 아니지만 영어의 경우는 1년에 1~2번 필요시 파견가고 그 외 언어는 특정 행사가 있을 경우 통역병이라는게 있다~ 는걸 보여주려고 차출되는 정도?)

- 근무환경이나 생활리듬은 꽤나 특수한 편인데 와서 경험해보면 된다. 장단점이 극명하다.

- 근무환경 외 휴가나 외출박 관련한 규정도 꽤나 특수한편이다. 좋냐 나쁘냐 물어본다면 확실히 좋은쪽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 필자는 90년대 중반에 태어나서 군 입대 나이로는 상당히 늦은편인데 여기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더러 있고 비슷한 나잇대도 더러 있어서 좋다. 어학병 평균 연령이 높다는것은 실증적 사실인듯 하다.